구약성경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자, 유대교와 기독교가 공유하는 가장 오래된 신앙 전통의 핵심 문헌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성경을 단순히 “신약 이전의 성경” 정도로만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그 명칭의 유래, 문헌의 형성 과정, 정경 확정의 역사, 유대교와 기독교의 해석 차이, 외경 논의까지 매우 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책의 목록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구약성경의 의미와 구성에서부터 문헌사,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 외경 논쟁, 사해문서의 발견, 그리고 오늘날 교파별 이해에 이르기까지 전체 흐름을 설명형으로 정리해 본다.
구약성경이란 무엇인가
구약성경(舊約聖經, 히브리어: הברית הישנה, 라틴어: Vetus Testamentum,영어: Old Testament)또는 구약성서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경전으로 이해하는 문헌이다. 보다 중립적인 표현으로는 ‘히브리성경(Hebrew Bible)’이라고 부르며, 오늘날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아우르는 학문적·중립적 용어로 이 표현이 널리 사용된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구약성경은 단순한 고대 이스라엘의 기록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고 예언하는 성경이다. 반면 유대교에서는 이를 ‘구약’이라고 부르지 않고 ‘타나크’ 또는 ‘히브리성경’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이미 같은 문헌을 두고도 종교 전통마다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구약성경의 전통적인 구성
구약성경은 전통적으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된다. 첫째는 모세오경이며, 히브리성경에서는 토라라고 부른다. 토라는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가 되는 율법과 언약의 문서로 여겨지며, 전통적으로는 모세가 직접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둘째는 역사서이다. 역사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부터 왕정 시대를 거쳐 바빌론 유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 부분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떻게 지키거나 어겼는지를 보여 주는 신앙적 역사 서술의 성격을 가진다.
셋째는 지혜문학이다. 지혜문학은 시와 노래, 격언, 철학적 성찰의 형식으로 기록되었으며, 인간 삶의 의미와 고난, 선과 악, 지혜와 경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같은 책들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는 예언서이다. 예언서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백성과 나라가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선포하며, 동시에 심판 이후의 회복과 구원의 소망도 함께 전한다. 예언서는 단순히 미래를 맞히는 책이 아니라, 현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문헌이다.
‘구약’이라는 명칭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구약’이라는 명칭은 처음부터 사용된 말이 아니다. 이 표현은 신약성경이 형성되고 그 경계가 점차 분명해지면서, 기존의 성경을 새롭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구약’은 문자 그대로 ‘옛 계약’이라는 뜻이며, 기독교의 관점에서 신약과 대비되는 하나님과의 옛 언약을 담은 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 명칭은 본래 기독교 내부에서 형성된 표현이기 때문에, 유대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경전을 ‘옛 것’으로 규정하는 명칭 자체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학문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으로는 ‘히브리성경’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
구약성경 문헌은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전통적으로는 기원전 1500년에서 기원전 400년 사이에 유대 민족의 구전 전승이 문자로 기록되어 구약성경이 형성되었다고 이해해 왔다. 그러나 현대 성서학은 각 문헌의 실제 작성 시기를 좀 더 후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토라, 즉 모세오경은 유다 왕국 후기부터 바빌론 유수기에 걸쳐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예언서와 성문서 역시 바빌론 유수기 이후 예루살렘 귀환 시기에 상당 부분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오늘날 성서학은 구약성경을 단일 저자가 한 번에 쓴 문헌으로 보기보다, 여러 시대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전승이 오랜 편집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로 정리된 문헌 모음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은 한 시점에서 갑자기 생겨난 책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신앙 공동체 안에서 전승되고 다듬어진 결과물이다.
구약 전승의 특성과 구전 전승의 의미
구약성경의 형성을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전승’이다. 구약에는 서로 다른 문체와 신학적 강조점을 가진 전승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신명기 전승, 제사장 문서, 고대 서사 전승 등이 자주 언급된다.
신명기 전승은 권고와 설교의 형식을 많이 띠며, 언약에 대한 신실한 순종을 강하게 촉구하는 문체가 특징이다. 제사장 문서는 정교한 문학 양식과 체계적인 신학, 그리고 제사 제도와 거룩함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반면 고대 서사 전승은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서술하며 인간적인 면모와 이야기성을 풍부하게 드러낸다.
또한 구전 전승은 단지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공동체 안에서 ‘공적 의미’와 ‘신앙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은 정치적으로 보면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사건이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새롭게 세우신 사건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역사 속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에서의 히브리성경과 정경 문제
유대교는 기독교처럼 ‘구약성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전을 ‘타나크’라고 부른다. 타나크는 토라, 느비임, 케투빔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각각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를 뜻하며, 이것이 유대교 경전 체계의 기본 구조이다.
히브리성경의 목록이 정확히 언제 확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얌니아 회의가 중요한 분기점으로 거론되어 왔다. 일반적으로는 기원후 90년경,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바리새파 중심의 유대교 재편 과정에서 히브리성경의 정경 기준이 세워졌다고 설명된다. 그러나 현대 학계에서는 얌니아 회의가 실제로 정경 목록을 공식 확정한 회의였는지에 대해 이견이 존재한다. 즉, 얌니아가 유대교 정체성 재정립에는 중요했지만, 정경 목록 전체를 확정한 회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실제로 구약성경 목록 확정의 명확한 증거는 2세기 이후 문헌들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요세푸스의 기록이나 에스드라 2서에서는 정경의 수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세부 목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으며, 이후 문헌들에서 비로소 보다 분명한 목록이 드러난다. 이 점은 정경 형성이 단번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점진적 과정이었음을 보여 준다.
기독교는 왜 70인역을 중요하게 보았는가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리스어 문화권의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어 원문보다 그리스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이 훨씬 널리 사용되었다. 당시 많은 신자들이 히브리어보다 그리스어에 익숙했기 때문에, 70인역은 자연스럽게 초기 교회의 성경이 되었다.
문제는 70인역 안에 유대교 히브리성경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은 문헌들, 곧 나중에 외경 또는 제2경전이라고 불리게 되는 책들이 함께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 기독교는 이러한 문헌들을 구약의 일부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고, 교부들 역시 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인용했다. 바로 여기에서 훗날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 사이의 외경 논쟁이 비롯된다.
초기 기독교의 구약 목록과 두 가지 흐름
문헌상 확인되는 최초의 비교적 정리된 기독교 구약 목록은 2세기 후엽 사르디스의 감독 멜리토의 편지에서 볼 수 있다. 이 목록은 유대교의 좁은 경전 목록에 가까우면서도 에스더서가 빠지고 지혜서가 포함되는 등 특징적인 차이를 보여 준다. 이후 오리게네스나 아타나시우스 같은 인물에게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모든 초대교회가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교부들은 외경이나 위경으로 분류될 수 있는 문헌도 성경처럼 인용하였고, 이로 인해 기독교 안에는 대체로 두 가지 흐름이 생겼다. 하나는 히브리성경에 가까운 ‘좁은 성경 목록’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70인역 전통을 폭넓게 수용하는 ‘넓은 성경 목록’의 입장이다.
보편 교회 시대와 외경 논쟁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 제국 안에서 공인된 이후, 교회는 교리와 제도뿐 아니라 성경 정경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때 예루살렘의 키릴로스 등은 유대교의 히브리어 경전과 그 목록을 더 우월하게 보며 외경을 정경에서 배제하려는 입장을 보였다. 동방교회의 여러 교부들과 일부 서방 신학자들도 이러한 입장에 동의했다.
반면 북아프리카와 라틴어 문화권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초대교회의 전통과 70인역의 권위를 옹호하는 흐름이 강했다. 결국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유대교 정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그리스어 문헌들까지 구약성경의 일부로 인정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 결정이 교회 전체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동방교회는 외경을 정경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지 않고, 교회 안에서 봉독은 하되 교리 도출의 직접 근거로 삼지 않는 ‘경독서’의 전통을 유지하였다. 이 차이는 훗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성서관 차이로 이어졌다.
교회 대분열 이후 구약 이해의 차이
11세기 교회 대분열 이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성경과 전통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점차 차이를 보이게 된다. 동방교회는 기존 전통을 크게 수정하지 않으면서 외경을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반면 서방교회는 사회 변화와 함께 교리와 신학을 더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갔고, 이 과정에서 외경 문헌도 일정 부분 활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되어, 단순한 책 목록의 차이를 넘어 신학적 권위와 교리 형성 방식의 차이로까지 확장되었다.
종교개혁과 구약 정경의 재편
16세기 종교개혁은 구약 정경 문제를 다시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 문헌들 사이에도 권위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고, 구약 정경에 대해서는 유대교의 히브리성경 목록에 더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 칼뱅 역시 서방교회가 유지해 온 넓은 구약정경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결과적으로 종교개혁 세력은 외경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에 맞서 천주교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기존 정경 목록을 다시 확인하고, 외경으로 분류되던 일부 문헌들을 다른 성경 문서들과 같은 수준의 권위를 지닌 것으로 재확인하였다. 이 결정은 곧 종교개혁 세력과의 결정적인 갈등으로 이어졌고, 결국 개신교는 유대교의 히브리성경 24권을 재분류한 39권의 독자적 구약정경 목록을 확립하게 된다.
구약성경 목록
| 구분 | 유대교 히브리성경 | 개신교 구약성경 | 천주교 구약성경 | 동방정교회 구약성경 |
|---|---|---|---|---|
| 권수 | 24권 | 39권 | 46권 | 49~50권 |
| 구성 방식 | 토라, 느비임, 케투빔 | 율법서,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 개신교 구약 + 제2경전 일부 포함 | 천주교보다 더 넓은 범위의 제2경전 포함 |
| 특징 | 유대교 정경 기준 | 히브리성경 24권을 재분류하여 39권으로 배열 | 외경을 제2경전으로 인정 | 외경 일부를 경전 또는 준경전 전통으로 수용 |
개신교 구약성경 39권 목록
| 구분 | 책 이름 |
|---|---|
| 율법서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 역사서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
| 시가서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
| 대선지서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
| 소선지서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
오늘날 교파별 구약성경 권수 차이
오늘날 유대교의 히브리성경과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분류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골격을 공유한다. 다만 권수 계산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유대교는 24권, 개신교는 39권으로 센다. 반면 천주교와 동방정교회는 여기에 제2경전을 포함하기 때문에 권수가 더 많다.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39권을 구약성경으로 인정한다. 천주교는 제2경전을 포함하여 46권으로 본다. 동방정교회는 전통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49권에서 50권 정도로 분류한다. 결국 같은 구약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어떤 문헌까지 정경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교파별 차이가 생긴 것이다.
사해문서의 발견이 왜 중요한가
구약성경 문헌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은 사해문서의 발견이다. 사해문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본문으로 알려진 것은 대체로 기원후 900년경의 마소라 본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구약의 최종 편집 시점과 현존 사본 사이에 1000년이 넘는 간극이 생기므로, 본문이 얼마나 정확하게 전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발견된 사해사본은 이 문제를 크게 바꾸었다.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본들이 확인되면서, 구약 본문 전승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훨씬 더 분명해졌다. 더욱이 사해사본과 훨씬 후대의 마소라 본문을 비교했을 때 내용상 상당한 일치가 확인되면서, 본문 전승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졌다.
또한 사해문서에서는 토빗기처럼 그동안 헬라어로만 전해졌다고 여겨졌던 일부 문헌의 히브리어 판본도 확인되었다. 이는 외경과 정경을 둘러싼 논의를 더 복잡하고도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자료이다. 다만 히브리어 판본이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 문헌이 모든 유대 집단에서 정경으로 인정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에세네파와 사해사본의 목록 문제
사해사본을 보존한 집단으로 흔히 에세네파가 거론되는데, 이들이 사용한 문헌들의 범위는 후대 바리새파 중심 유대교의 히브리성경 목록과 완전히 같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에스더서는 정경적 지위가 불분명하고, 개신교에서 위경으로 보는 에녹서나 희년서, 외경에 속하는 예레미야의 편지 등이 더 넓게 읽혔던 흔적도 보인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에세네파가 직접 “우리의 정경은 이것이다”라고 명시한 공식 목록을 남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말하는 에세네파의 정경 목록은 여러 문헌 증거와 보편적 기준을 바탕으로 추론한 결과에 가깝다. 따라서 이 부분은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인 분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현재 교파들은 외경을 어떻게 보는가
오늘날 외경에 대한 입장은 교파마다 상당히 다르다. 천주교는 외경을 제2경전으로 인정하며, 교리와 신학의 근거 문헌으로 사용한다. 동방정교회는 외경을 비표준 경전 또는 제2경전으로 보면서 읽을 수는 있으나 교리 형성에서는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개신교 내부도 완전히 같지 않다. 성공회는 준정경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며 봉독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루터교나 감리교 등은 외경을 교리의 직접 근거로 삼지는 않지만, 신앙에 유익한 문서로 읽을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반면 개혁주의 전통의 장로교, 침례교, 개혁교회 등은 외경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신앙적 권위도 매우 제한적으로 본다.
한국의 대표적인 개신교 성경 번역 전통에서도 이러한 입장이 반영되어, 예배용으로 널리 사용하는 개역개정과 새번역에는 외경이 포함되지 않고, 공동번역 성서 등 일부 번역본에서만 부록 형태로 수록된다.
맺음말
구약성경은 단순히 오래된 종교 문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되고 전승되고 해석되어 온 살아 있는 신앙의 기록이다. 이 문헌은 유대교에서는 타나크로, 기독교에서는 구약성경으로 불리며 각 전통 안에서 서로 다른 의미와 권위를 부여받아 왔다. 또한 정경 형성과 외경 논쟁, 사해문서의 발견, 교파별 권수 차이 등은 구약성경이 단순한 책 목록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적·신학적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구약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몇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아는 수준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전승의 층위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각 공동체가 이 문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함께 이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앙과 역사, 문학과 사상을 함께 탐구하게 만드는 중요한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