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고자 하는가?



마치 물 위를 걷는 만큼이나 기적이 필요한 순간에 있는가? 모든 상황이 압도적으로 불가능해 보여 꼼짝없이 서 있는가?

베드로는 놀라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가운데 있었을 듯 하다. 타고 있는 배가 풍랑을 만나 정신없는 통이었는데다가 멀리 보이는 누군가는 바다 위를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제자들이 보고는 심히 놀라 유령이라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한다. 곧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그러한가 살피니 예수님이시다. 순간 베드로는 자기도 물위로 걷고자 한다고 예수께 청한다. 예수님은 그저 ‘Yes, Come.’ 하신다. 베드로는 한 발을 내딛는 것으로 물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한다. 무엇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케 하였는가? 무엇이 압도적인 불가능을 가능케 하였는가? 


제자들은 사실 방금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경험하였다. 그런 예수님인데도 물 위를 걸어 오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진정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방금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도 풍랑 위의 배 위에서 주님께 구하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물 위의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알지 못하고 유령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바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베드로는 진정 당신이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게 하라 청한다. 물을 걷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가 예수님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기적을 본인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저 예수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저 오라 하신다. 베드로가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하는 순간 물 위를 걷는다.


무엇이 베드로를 걷게 하였는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이고 의지이시다. 그 능력을 베드로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시선을 마주쳤으리라. 그를 보는 것으로 용기가 생겼으리라.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믿음이 뜨겁게 타올랐으리라. 그 힘으로 베드로는 발을 떼어 물 위에 첫 발을 놓는 것으로 반응하고 그것으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펼쳐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마치 어린 아이가 두려움에 떨거나 무언가 못하겠다고 징징거릴 때, 엄마들이 종종 이렇게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누구야, 엄마 눈 봐봐. 괜찮아. 할 수 있어. 무서운 거 아니야. 할 수 있어’ 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을 보며 엄마를 통해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격려와 또 내가 실수를 하거나 위험에 처하여도 엄마가 도와주실거라는 믿음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아이는 힘을 얻어 발을 떼어 본다. 당연히 아빠여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의 부모의 능력과 확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분 주시는 확신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인 줄 우리가 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그분의 능력은 측량할 수가 없다.


그저 예수님과 눈을 마주하고 떼지 않는 것으로 베드로는 능력을 체험한다. 그 때부터 베드로의 발 아래 상황은 베드로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베드로에게는 발 아래 거대하게 휘몰아치는 바다물은 압도적인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리라. 베드로가 해보려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눈을 마주한 순간 그 문제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주님의 것이다. 발 아래 문제의 상황은 이제 내 싸움이 아니요, 주님의 싸움이다. 주님의 싸움이니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이다. 


베드로는 그저 주님과 시선을 고정함으로 발 아래 어떤 상황이라도 베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가 시선을 돌려 바다를 보는 순간, 그 순간부터 베드로에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온다. 이제 이 싸움은 다시 베드로의 것이 되고 만다.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물 속에서 허우적된다. 그제서야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신다. ‘어찌 의심하여 나를 보지 못하고 그 불가능한 상황을 바라보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하신다.


무엇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케 하였는가? 무엇이 압도적인 불가능을 가능케 하였는가? 

우리는 그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에 내 믿음이 많은지 적은지 묻지도 않으신다. 그저 주님을 보기 원하신다. 문제에 빠져 있지 말고 그저 그 시선을 들어 주님과 마주하고 눈을 맞추기를 원하신다. 그 분의 눈을 보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물 위를 걷는다. 그러면 불가능이 가능해 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시선을 주님께 둘 때, 그 때, 나의 발 아래 문제들은 나의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정리하신다. 어떤 풍랑이라도 잠잠케 하시며 그 위로 평안하게 걷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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