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물 위를 걷는 만큼이나 기적이 필요한 순간에 있는가? 모든 상황이 압도적으로 불가능해 보여 꼼짝없이 서 있는가?
베드로는 놀라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는 가운데 있었을 듯 하다. 타고 있는 배가 풍랑을 만나 정신없는 통이었는데다가 멀리 보이는 누군가는 바다 위를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제자들이 보고는 심히 놀라 유령이라 소리를 지르며 무서워한다. 곧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말 그러한가 살피니 예수님이시다. 순간 베드로는 자기도 물위로 걷고자 한다고 예수께 청한다. 예수님은 그저 ‘Yes, Come.’ 하신다. 베드로는 한 발을 내딛는 것으로 물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한다. 무엇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케 하였는가? 무엇이 압도적인 불가능을 가능케 하였는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29)
제자들은 사실 방금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경험하였다. 그런 예수님인데도 물 위를 걸어 오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진정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방금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고도 풍랑 위의 배 위에서 주님께 구하지도 못하였을 뿐 아니라, 물 위의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알지 못하고 유령이라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바다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르 지르거늘” (마 14:25-26)
베드로는 진정 당신이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게 하라 청한다. 물을 걷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가 예수님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으리라. 기적을 본인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그저 예수님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저 오라 하신다. 베드로가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응하는 순간 물 위를 걷는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사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28-29)
무엇이 베드로를 걷게 하였는가?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이고 의지이시다. 그 능력을 베드로가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시선을 마주쳤으리라. 그를 보는 것으로 용기가 생겼으리라.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믿음이 뜨겁게 타올랐으리라. 그 힘으로 베드로는 발을 떼어 물 위에 첫 발을 놓는 것으로 반응하고 그것으로 예수님의 능력으로 펼쳐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마치 어린 아이가 두려움에 떨거나 무언가 못하겠다고 징징거릴 때, 엄마들이 종종 이렇게 아이들을 다루는 모습과 비슷하다. ‘사랑하는 누구야, 엄마 눈 봐봐. 괜찮아. 할 수 있어. 무서운 거 아니야. 할 수 있어’ 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을 보며 엄마를 통해 할 수 있다는 확신과 격려와 또 내가 실수를 하거나 위험에 처하여도 엄마가 도와주실거라는 믿음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아이는 힘을 얻어 발을 떼어 본다. 당연히 아빠여도 마찬가지이다. 육신의 부모의 능력과 확신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분 주시는 확신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인 줄 우리가 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그분의 능력은 측량할 수가 없다.
그저 예수님과 눈을 마주하고 떼지 않는 것으로 베드로는 능력을 체험한다. 그 때부터 베드로의 발 아래 상황은 베드로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베드로에게는 발 아래 거대하게 휘몰아치는 바다물은 압도적인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리라. 베드로가 해보려해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눈을 마주한 순간 그 문제는 이제 나의 것이 아니다. 주님의 것이다. 발 아래 문제의 상황은 이제 내 싸움이 아니요, 주님의 싸움이다. 주님의 싸움이니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이다.
베드로는 그저 주님과 시선을 고정함으로 발 아래 어떤 상황이라도 베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가 시선을 돌려 바다를 보는 순간, 그 순간부터 베드로에게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 온다. 이제 이 싸움은 다시 베드로의 것이 되고 만다. 무서워 소리를 지르며 물 속에서 허우적된다. 그제서야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신다. ‘어찌 의심하여 나를 보지 못하고 그 불가능한 상황을 바라보느냐. 믿음이 작은 자여’ 하신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 지라” (마 14:30-32)
무엇이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케 하였는가? 무엇이 압도적인 불가능을 가능케 하였는가?
우리는 그저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 순간에 내 믿음이 많은지 적은지 묻지도 않으신다. 그저 주님을 보기 원하신다. 문제에 빠져 있지 말고 그저 그 시선을 들어 주님과 마주하고 눈을 맞추기를 원하신다. 그 분의 눈을 보기를 원하신다. 그러면 물 위를 걷는다. 그러면 불가능이 가능해 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시선을 주님께 둘 때, 그 때, 나의 발 아래 문제들은 나의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 정리하신다. 어떤 풍랑이라도 잠잠케 하시며 그 위로 평안하게 걷게 하신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마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