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聖經)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다. 히브리어로는 ביבל, 그리스어로는 τὰ βιβλία라 불리며, 영어로는 Bible이라고 한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책들’이다. 즉, 성경은 단일 저자가 한 시대에 기록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여러 문서들의 집합체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성경을 단순한 종교 문헌이 아니라, ‘신의 영감이 담긴 말씀’이자 ‘신과 인간의 관계를 기록한 거룩한 문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구체적인 역사, 언어, 문화 속에서 기록되고 편집된 문헌이라는 점에서, 신앙과 역사 사이에 놓인 독특한 위치를 지닌다.
성경이라는 이름의 기원과 번역의 의미
‘Bible’이라는 영어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 τό βιβλίον(그 책)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은 파피루스 무역의 중심지였던 비블로스(Byblos) 지역과 관련이 있다. 종이를 뜻하는 재료와 연결된 이 어원은 성경이 본질적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양에서는 오랜 세월 진리로 검증된 문헌에 ‘경(經)’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에 따라 “Holy Bible”은 ‘거룩한 경전’이라는 뜻으로 ‘성경’이라 번역되었다. 이후 공동번역성서 발행을 계기로 ‘성서’라는 표현도 널리 사용되었다. 일부에서는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라는 명칭을, 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는 이들이 ‘성서’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러한 용어의 차이 역시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반영한다.
유대교의 성경, 타나크의 형성
기독교에서 ‘구약성경’이라 부르는 부분은 본래 유대교의 경전인 히브리어 성경, 곧 타나크(Tanakh)이다. 타나크는 대략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전 400년경 사이에 걸쳐 형성되었다. 바빌로니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지에서 전승되던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와 신앙 고백이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되고 편집되었다.
타나크는 총 24권으로 구성되며, 율법서·예언서·성문서로 나뉜다.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된 이후 유대교는 정체성 재정립의 과제를 안게 되었고, 약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회의를 통해 현재의 분류 체계가 확립되었다는 학설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유대교는 이 히브리어 성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예수와 관련된 문서는 포함되지 않는다.
기독교의 성경: 구약과 신약
기독교는 타나크를 ‘구약성경(Old Testament)’이라 부르며,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 교회의 기록을 담은 ‘신약성경(New Testament)’을 더하여 성경을 구성한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명칭은 각각 ‘옛 약속’과 ‘새 약속’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히브리 성경과 동일하지만, 배열과 권수는 교파에 따라 차이가 있다. 가톨릭은 구약 46권과 신약 27권, 총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개신교는 히브리어 원본이 있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 총 66권을 성경전서로 인정한다.
이 차이는 외경(제2경전)에 대한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외경을 성경에 포함하지만, 개신교는 이를 신앙적으로는 유익할 수 있으나 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본다.
신약성경의 형성과 정경 확립
신약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도들과 초기 교회 공동체는 예수의 언행과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를 문서로 정리하였다. 복음서 네 권은 예수의 생애와 교훈을 담고 있으며, 사도행전은 복음이 유대인을 넘어 비유대인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서신은 교회 공동체의 신앙과 실천을 설명하고,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 희망을 제시한다.
이 문서들은 기원 후 50년에서 150년 사이에 형성되었으며, 여러 교회 공동체에서 필사되고 번역되었다. 4세기에 이르러 로마, 히포, 카르타고 공의회를 거치며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신약(New Testament)’이라는 명칭이 공식화된 것도 이 시기이다.
성경의 문학적 성격과 역사적 깊이
성경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 문헌이다. 율법서에는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문서와 족보, 통계가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서에는 영웅 서사와 연대기가 담겨 있다. 욥기·전도서·잠언은 지혜문학으로, 시편과 아가는 시가문학으로 분류된다. 다니엘서와 스가랴서 일부는 묵시문학의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다양한 문학 형식은 성경이 단순한 교리서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삶과 사유, 그리고 신앙 고백을 담은 종합 문헌임을 보여준다. 특히 구약성경은 기원전 13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약 천 년 이상에 걸친 역사적 배경을 담고 있어, 고대 근동 문명과 세계사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교파별 성경 이해의 차이
가톨릭은 로마 공의회와 히포·카르타고 공의회를 통해 성경 목록을 확정하였으며, 종교개혁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를 재확인하였다. 이후 구약 46권, 신약 27권, 총 73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교회 역시 제2경전을 성경으로 인정하지만, 교리 도출의 범위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일부는 제한적 교리 적용을 인정하는 반면, 러시아 정교회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개신교는 히브리어 원본이 있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만을 확고한 정경으로 인정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외경을 신앙적으로는 유익하나 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았다.
성경의 사회적 상징성
성경은 종교 공동체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독교가 국교이거나 왕실 종교인 국가에서는 공직 취임 선서 시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전통이 있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도 대통령 취임 선서에 성경을 사용하는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종교 문헌을 넘어 도덕적 권위와 역사적 전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맺음말: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경은 신앙의 관점에서는 계시의 말씀이며, 역사적 관점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헌 전통이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 공동체의 경험이 축적되어 하나의 경전으로 자리 잡은 이 책은 인류 문명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결국 성경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석되고 읽히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텍스트이다. 신앙과 학문, 전통과 비판적 성찰 사이에서 성경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또 새로운 이해를 요청하는 살아 있는 문헌으로 존재하고 있다.